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고급 순양전함 (문단 편집) == 기타 == 영국에서 건조된 1번함 공고와 일본에서 건조된 자매함들 간에 품질 차이가 있어서, 일본에서 건조한 공고급을 개장하는데 쓴 [[드릴]]을 1번함 공고에 사용했더니 드릴이 [[장갑(무기)|장갑판]]을 못 뚫고 구부러지는 바람에 영국에서 신형 드릴을 수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루머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히에이도 마찬가지로 영국제 VC[[강판]]을 사용했으나 히에이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적힌 곳마다 드릴이 굽었느니 부서졌느니, 아니면 단순히 구멍이 뚫리지 않았을 뿐이니 등 제각각 다르게 전해지는 점, 건조 당시면 모를까 공고급의 1차 개장 시점인 1930년에 VC강은 이미 구식 기술이었다는 점[* 당장 공고의 1차개장에 더 이후 기술인 VH강에 기반을 둔 NVNC강이 사용되고 있다.]을 고려하면 신빙성은 많이 낮은 편이다. 1차 개장 이전의 일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게, 공고급은 1차 개장 이전까지는 장갑에 드릴을 사용할 만한 개장을 받은 적이 없다. 다만 당시 일본의 공구 제작 기술이 영국이나 독일에 비해 많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2차대전 때 일본이 전문 공작함[* 조선소가 아닌 일선에서 손상된 함선을 수리할 수 있는 배. 1/3토막이 없어진 배를 대양항해가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주포탑이 파괴됐으면 없는대로 작전투입할 수 있게 재생하기도 한다. 아카시와 대응해 유명한 미국 선박은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를 살려내 전황을 뒤엎는 데 큰 공헌을 한 베스탈.]을 [[아카시 공작함|아카시]] 단 한 척밖에 가지지 못한 이유가, 아카시에 탑재한 독일산 기계를 복제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이 악착같이 찾아내 아카시를 부순 뒤에 동남아의 일본 군함들은 전투 후 신속한 수리를 받지 못해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전장에 복귀하기 힘들어졌다. 1차 대전이 발발할 즈음에 영국이 일본에게 공고와 동형함의 대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공고급도 충분히 1선급 순양전함이었고 독일 해군을 견제해야 하는 영국 입장에서는 군함 한척 한척이 아쉬운 상황이라 외국에서 주문해서 [[캐나다급|건조하던 군함도 구입해서 썼고]] 당시 해군장관인 처칠은 다른 나라가 주문해서 건조하던 배도 [[HMS 애진코트|강탈해서 사용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라쇼몽의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해군기관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1번함 공고에서 4년간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https://www.amazon.co.jp/%E8%BB%8D%E8%89%A6%E9%87%91%E5%89%9B%E8%88%AA%E6%B5%B7%E8%A8%98-%E8%8A%A5%E5%B7%9D-%E7%AB%9C%E4%B9%8B%E4%BB%8B-ebook/dp/B009NJPR9I/ref=sr_1_1?s=digital-text&ie=UTF8&qid=1426417978&sr=1-1&keywords=%E8%BB%8D%E8%89%A6%E9%87%91%E5%89%9B|'군함 공고 체험기']]라는 제목의 체험기를 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